전북 고창여행/高敞 고인돌(支石墓)유적 드넓은 자연을 만나다.【20년9월24일】
1박2일
20년9월24,25일
경북(포항)에서 전북,전남 장거리 여행길이다.
우리나라 3대 꽃무릇 군락지
전북 고창(선운사 꽃무룻,고인돌,학원농장)
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
전남 함평 (용천사 꽃무릇)
아침,저녁으론 쌀쌀한데 한낮의 따가운 햇살 덕분에 무더운 날씨였다.
요번 여행중에 풍경은 다 좋았지만,
영광 불갑사 (꽃무릇) 제일 좋았던것 같다
새벽에 들어갔으니 ....^^
하나씩 여행 보따리 풀어 볼까한다.
해마다 고창에 오면서 고인돌 유적지에 발걸음이 어려웠는데,
요번에 가 보았다.
뜻하지 않는 선물 같은 풍경,마주한 풍경을 보여주는 고창 고인돌...
뜻하지 않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뭔가를 딱 느끼게 되는 순간
이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조금 아쉬운 점은 코로나로 인해 박물관은 운영을 하지 않아서 다음 기회가 오면 운곡습지 또한 걸어보고 싶은곳이였디.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며,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과정과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 및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高敞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
고창 고인돌 유적을 걸어서 둘러보았다.
뜨거운 햇살에 걷는것도 힘들었지만 설레임이 가득한 마음으로 출발...
죽림선사마을에서
선사시대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고,
문화 탐방 고인돌 박물관에는 넓은 문화공간을 열차를 타고 느낄 수 있는 고인돌 탐방 열차가 있는데,
모로모로 기차를 타고 선사시대 문화마을을 체험하기도 하고 초원 위에 웅장하게 자리한 고인돌을 관람할 수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운행하지 않는다
봉산리 고인돌떼
고인돌 박물관 에서
북쪽을 따라 가는 길은 고인돌유적 이정표를 따라가면 되는데,
운곡람사르습지도 같은 방향이다
고인돌 유적이 밀집된 곳을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 청동기 시대 마을을 재현한 곳이 있다
죽림 선사마을이 보이고 작은 개울에 오리떼 놀고 있는 모습도 정겹다
고창 고인돌공원의
죽림선사마을 너머로 고창 고인돌유적이 있다
굉장히 넓은 구간에 펼쳐져 있어서 걸어서 다니기에는
조금 힘들 수도 있는데,하나하나 보려면 걷는 게 좋다
3000년 전 고창에 살던 사람들은 벼농사, 사냥, 어획활동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한민족의 시원을 알 수 있는 공간, 고창 고인돌 유적
최근 유전자 분석 등의 방법을 통해서 우리 한민족의 기원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10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던 구석기 시대 인류가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고고학계에서도 상당히 회의적이다.
DNA 분석에 의하면 남방계 아시아인(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들이 신석기 시대 무렵부터 오랜 시간을 걸쳐 중국 서쪽 해안선을 따라서
계속 북상하다가 대거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그들은 벼농사를 갖고 들어온 농경민족이었다.
( 단군신화 곰 )
한편, 중앙아시아 지역을 따라 이동한 북방계 아시아인들 역시 (단군신화 호랑이 ) 청동기, 철기 등의 새로운 문명을 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4000~3000년 전 한반도에서는 북방계와 남방계 즉 농경민과 유목민
곰과 호랑이의 문명이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새로운 문명으로 꽃피우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즉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우리 한민족의 탄생 비밀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 단군신화가 그것을 상징함. )
따라서 고인돌 유적이 즐비한 3000년 전 고창은
두 문명이 활발하게 융합해서 새로운 문명으로 태어난 한민족의 상징 같은 곳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청동기 문명을 향유했던 그들이
실질적인 우리의 선조라는 점에서 고창 고인돌 유적이 갖는 의미는 대단하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문명의 융합을 상징하듯
가을 햇살이 뜨겁게 내리쪼였다.
고창고인돌유적은
동쪽의 1코스와 2코스,선사마을 위쪽의 3코스
그리고 서쪽의 4, 5코스로 나뉘어졌다.
고인돌의 형태나 규모가 모두 제각각이라 한곳에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모여 있다는 신기하다
한반도는 ‘고인돌왕국’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고인돌들이 존재한다.
어느 동네의 모든 빨래판이 죄다 고인돌이었다는 일화도 전해질 만큼 고인돌이 많다.
고인돌하면 떠오르는 지역은 강화도, 풍납동 등 많지만 오늘은 전북 고창의 고인돌군을 살펴보자.
2000년 12월 고창군 전역에 분포하는 고인돌 447기가 강화도와 화순의 고인돌을 양팔에 끼고 당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고인돌은 고창 지역에만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거석문화의 한 유형이다. 그런데 왜 고창 지역 고인돌이 그토록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일까?
고인돌은 선사 시대 무덤의 한 양식이다. 고인돌은 순수한 우리말로서, 줄이면 ‘괸돌’이라 부르고, 영어로는 Dolmen이라 표기하며,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라고 쓴다.
고인돌이 사람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고창 지역은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좋은 것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선사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고창 지역의 자연 지리를 살펴보면 평지 돌출형 선운산지에 소요산과 경수산 외에 동부 산지에는 방장산·문수산·방문산의 호남정맥이 병풍처럼 고창읍을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산지 외에 고창 지역은 낮은 구릉의 야산 지형으로, 남서쪽으로 해안을 두르고 해안 사구와 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이 위치하고 있다.
고창 전역의 지형을 둘러봐도 고인돌을 채석할 수 있는 암석 지형이 매우 협소한데도 구릉 곳곳에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은 고인돌 사회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다.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 지석묘란 선사시대 무덤 형식의 하나로 고인돌로 고창 아산면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약 1.8km에 이르는 야산 기슭에 440여 기의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있다.
기원전 400~500년 무렵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집단 무덤으로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들의 가족무덤 인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사 시대에 사람들이 고창 지역으로 몰려와서 살게 된 것은 비옥한 토양 때문이었을 것이다.
석제품의 농기구를 사용하던 시기에 농사를 짓고 살기에는 고창 지역이 최적지였음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그 토질의 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수박과 땅콩, 복분자가 고창 지역의 특산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것도 모두 비옥한 구릉 지대의 토질 덕분이다.
청동기시대에 고창 지역으로 들어와 살던 사람들도 이러한 고창 지역의 지형과 지질을 발견하고 살기 좋은 고장의 터를 닦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수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인돌의 고장 고창
전북지역 고인돌의 66% 보유
고창 고인돌 유적의 중심인 제 3코스
바둑판식 37기, 개석식 50기, 기타 41기 등 128기 밀집 분포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대규모 고인돌 유적지가 있는 곳!
고창 고인돌 유적은 전북 고창군 죽림리와 매산리 일대에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7기가 분포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다.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며 탁자식, 바둑판식, 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가 되어 있는데요, 고창 고인돌 유적은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사적 391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좀 더 올라가면
운곡람사르습지 나온다고 하는데 (관리인분 께서 이왕 오셨는김에 가 보라고 하지만 오늘 들릴곳이 두군데 더 있다 보니 다음으로 기약하고..)
운곡저수지로 이어지는 습지 탐방길도 있고,,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유적지는 전북 고창.
고인돌 박물관이 있는 죽림리를 중심으로 상갑리, 도산리, 봉덕리, 운곡 마을과 주변에 많은 고인돌 유적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총 6개 구역으로 분류되어 있고. 2008년 현장 조사 결과 고창 지역에는 총 155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고인돌은 447기이다.
약 1.8km의 공간에 400기가 넘는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는 곳은 고창이 유일하다.
나지막한 산의 능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 서면, 앞으로 흐르는 고창천과 넓은 평원이 내려다보이고.
이런 자연환경 때문에 이곳에 많은 고인돌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넓은 평원과 농사에 필수적인 개천이 있는 것을 보면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농경 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고창 지역의 고인돌은 많은 사람이 동원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거대한 규모로 당시 이곳에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고인돌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고창 유적지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의 종류가 다 모여 있다.
모양과 형식은 물론이고 크기도 다양한 고인돌을 볼 수 있다. 고창에는 바둑판식을 중심으로 탁자식과 지상석곽식, 개석식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주로 바둑판식과 개석식이 많지만 탁자식과 바둑판식의 중간 형태로 땅 위로 석관(시신을 넣어 놓은 관)이 드러난 지상석곽식 고인돌도 많이 있어요. 지상석곽식 고인돌은 고창에서만 볼 수 있는 고인돌 이라고 한다.
고창의 고인돌은 다른 지역의 고인돌과 뚜렷한 차이점이 몇 가지 있고. 그중 하나가 고인돌을 떠받치고 있는 굄돌이다.
고창에서 볼 수 있는 굄돌은 직사각형과 괴석형, 긴 사각형 등 매우 다채롭다.
고인돌 위에 올린 덮개돌의 크기와 모양도 다양하고. 넓이와 폭, 두께는 비슷한 것이 많지만 돌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 많다.
작은 덮개돌은 10~20t 정도이지만 커다란 것은 돌 하나가 200~300t이 넘는 것도 많고.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위와 경제력에 따라 다른 규모의 고인돌을 만들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고창 죽림리 앞 도산리 마을에는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을 축소한 것처럼 생긴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이곳에는 5기의 고인돌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탁자식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굄돌의 높이가 1.9m로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보다 낮고 굄돌 사이의 폭도 좁다. 그러나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 남아 있는 탁자식 고인돌 중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3,000년 전 고창
기후는 온화했고 땅은 풍요로웠다.
바다와 맞닿은 곳까지 펼쳐진 너른 평원에선
토실하게 영근 벼가 바람에 일렁이고 그곳을 휘돌아가는 강은 물 반 고기 반이었다.
산에는 맛있는 열매가 지천이고
살찐 사슴과 노루, 산돼지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다녔다.
먹고 살 걱정 없었던 3000년 전 고창 땅
노인들은 지혜롭고
청년은 강인했으며
건강한 아녀자들의 보살핌으로 아이들은 튼튼하게 자랐다.
이웃 부족들과 서로 왕래하며
가진 것을 나누고 어려운 일에 힘과 지혜를 보태며 사는 평화로운 땅이었다.
3000년 전 고창 사람들은 하늘을 섬겼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된다고 믿고 영혼의 거처를 삼아서 고인돌을 세워주었다.
마을 고삿, 산기슭, 논두렁과 밭두렁, 어디에서 나 볼 수 있는 별처럼 많은 고인돌은 그들이 다녀간 흔적이다.
오랜 옛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고창
한반도의 첫 수도다.
고창 고인돌을 상징하는
귀여운 모로모로!(오른쪽)
모로비리국이 세워졌던 고창의 역사로 인해
모로모로라는 캐릭터가 탄생했다고 한다.
9월 중순 이후
가을 여행 삼아서 선운사 꽃무릇 구경과 함께하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 답사여행을 강추한다.
고창읍 죽림리와 도산리에
약 450기가량의 고인돌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그 주변에 고인돌 박물관이 세워지고 선사인 거주지가 복원되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관람차에 몸을 싣고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도 있다.
이번에 갔더니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고인돌 박물관은 문을 열지 않고 관람 열차도 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람객도 거의 없었다.
덕분에 우리 일행은 약 3km 거리의 고인돌 탐방로를 돌면서 호젓한 시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고창고인돌유적
수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창 고인돌유적를 걸으며 선사시대 사람들과 소통하였다.
2020년 9월 24일(목)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고창고인돌 유적 답사
커다란 돌로 만든 거석 기념물은 인류가 가진 오래된 유산 중 하나이다.
어느 대륙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지역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르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유적이다.
어떤 곳에서는 신에게 의식을 올리는 신전으로, 어떤 곳에서는 무덤이나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거석 기념물인 고인돌은 선사 시대 무덤의 일종이다.
권력의 상징이자 신앙의 대상으로, 선사 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유적.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한반도의 고인돌은 전국에 걸쳐 있지만 좁은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유적지는 전북 고창과 전남 화순, 인천 강화도.
고창, 화순, 강화에 있는 고인돌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크다.
숫자가 많은 것은 물론 형식도 다양하여 선사 시대 박물관이란 표현을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나라 역사도 함께 공존하고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장소였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여기는 고창 고인돌 유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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