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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과여행▒/2016년앨범

안동여행/병산서원 &붉게 물든 배롱나무 꽃 따라서.....【16년8월6일】

 

 

병산서원

 

성주 맥문동 사진 담고 보니 오전9시 되어간다.그길로 안동으로 출발 한다.

오늘 날씨 불볕 더위라 이동 하는 자체가 힘이 들지만 오늘 아니면 배롱나무 꽃 상황을 놓칠껏 같았다 .한국의 대표적 유교서원안동에 자리잡고 있는 병산서원 배롱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말이다.. .병산서원은 나에게 처음 발걸음 하는곳이라 어떤 풍경이 그려질지 궁금하다.

일주일전 왔어야 했는 아쉬움,구도을 어떻케 잡아야할지,,내년에는 더 느낌 있는 풍경을 담아보리라..

 

 

 

병산서원(屛山書院)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다.서원은 본래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여 건립되었다.

이 서당은 읍내 도로변에 있어 시끄러워 공부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1572년(선조 5)에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 1542∼1607)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서당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7년 재건되었다.

 

 

 

풍악서당이 서원으로 된 것은 1614년(광해군 6) 사당을 건립하고 유성룡의 위패를 모시면서부터이다. 서원은 1863년(철종 14)에 조정으로부터 '병산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서원 47곳 중의 하나이다.

 

 

 

 

 

 

 

 

퇴계 이황에게 수학한 서애는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都體察使),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존망(存亡)에 처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1598년(선조 31) 이후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하회(河回)마을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건너 부용대 기슭에 있는 옥연정사(玉淵精舍)에서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며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하였다.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간의 전황을 기록한 책이다.

 

 

서애는 책 이름 『징비록』을 『시경(詩經)』에 나오는 "미리 지난 일을 징계해서 뒷날 근심이 있을 것을 삼간다[毖]"고 한 구절에서 빌어왔는데, 다시는 이 나라에 임진왜란과 같은 참담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됨을 후세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징비록』은 서애의 고택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忠孝堂)의 유물각인 영모각(永慕閣)에 전시되어 있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과는 화산(花山)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병산서원은 화산의 동쪽 기슭에, 하회마을은 그 반대쪽에 있다. '병산'은 강원도 산간 지방을 돌아 나온 낙동강 물줄기가 모처럼 넓게 트인 곳을 만나 센 물살을 만들며 항아리 모양으로 돌아 나가는 강변에 병풍[屛]처럼 산이 펼쳐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은 병산이 기암 벼랑 밑으로 흐르는 낙동강물에 깊게 그림자를 드리운 절경을 마주보며 자리잡고 있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가려면 예전에는 육로로 걸어가거나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넜는데, 요즈음은 버스까지 들어가는 찻길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도 옛 맛을 되씹고 하회마을과 병산서원과의 관계를 제대로 알려면 하회마을에서 논밭을 가로질러 산을 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옛 오솔길이 갖는 맛이 좋고, 산 너머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나 그 앞의 모래사장과 솔밭이 좋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은 세월이 흘러 희끗희끗한 청동색 반점의 기와지붕과 퇴락한 짙은 갈색 나무 기둥들로 찾는 사람들에게 회고(懷古)의 정을 불러일으키며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실제로 병산서원이 갖는 건축적 빼어남은 다른 곳에 있다.

 

 

흔히들 한국건축의 특징을 주변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고 하지만, 그 조화란 이미 있던 자연 환경을 읽어내어 거기에 합당한 건축을 어떻게 잘 앉히고 배치하는가에 달려 있다.

병산서원을 구성하는 건물 자체는 제향을 지내는 사당과 학문을 돈독히 하며 심신을 정진하는 강당, 재사 등 건물들로 되어 있어서 여타 서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와 같이 병산서원은 성리학적인 원칙에 바탕을 둔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러한 건물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빼어난 공간감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 8월 1일,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병산서원은 조선의 유학자인 유성룡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키워냈던 안동의 대표적인 사설 교육 기관이다.

특히 병산서원은 서원 건축의 백미라 불리는데, 건물의 배치를 통해 병풍 속 그림처럼 주변의 풍광을 끌어들인 건축술은 놀랍기 그지없다.진분홍 백일홍이 매혹적인 여름날의 병산서원을 소개한다.

 

 

 

 

 

 

 

 

병산서원 배롱나무는 높이 6~9m, 가슴높이 둘레 80~90㎝ 크기로 모두 6그루이다. 가지가 넓게 퍼져 있고, 줄기가 뒤틀린 듯한 형태이다.

 

 

 

 

 

 

 

서원 마당 곳곳에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특히 복례문에 들어서서 만대루로  오르는 계단 앞의 화단과 사당 계단 양옆, 장판각 주위에 많다...

 

 

 

 

 

 

 

 

장판각 앞쪽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공자가 은행을 심고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얘기에서부터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져오던 나무이니 서원과 잘 어울린다.병산서원에 그밖에 별다른 조경시설이 없는 것은, 주변 풍광 자체가 뛰어나서 보기만 해도 자연을 가득 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한가운데 들어감으로써,가두거나 소유하지 않고 자연을 누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연관이 잘 드러나 있다.지
 

 

 

 

 

 

 

 

 

 

 

 

 

 

 

 

 

영지(光影池)

 

광영지는 '천원지방' 형태의 연못인데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둔 우리나라 전통 연못의 조성원리라고 한다.
 

서원 정문(正門)인 복례문(復禮門)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연못이 있고 맞은 편 한 단 높은 곳에 옆으로 기다랗게 만대루(晩對褸)가 서 있다.
배롱나무가 만개하여 연못에 온전히 낙화되어 있는 풍경을 담고 싶었는데,,,
 

 

 

 

 

 

 

 

 

 

병산서원의 입구인 복례문의 모습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병산서원의 전 모습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 진다.

 

 

 

 

 

 

 

 

 

 

 

 

 

 

 

 

 

누 밑은 휘어진 자연 상태 그대로의 꾸불꾸불한 기둥이 받치고 있고,2층 누마루에는 반듯하게 다듬은 기둥들이 사방을 둘러쌌는데 벽은 두르지 않고 트여 있다.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대루(晩對樓) 아래에서 바라본 입교당

누 아래를 고개 숙여 지나서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강당인 입교당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입교당과 동재 사이로 빠져나가면 정면에 길고 높은 계단이 마주한다.
사당인 존덕사(尊德祀)로 오르는 길이다. 사당은 문과 담으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데, 단청이 칠해져 있는 문은 아무 장식이 없는 다른 건물들과 대조를 이룬다.

 

삼문으로 된 신문(神門)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음력 4월과 10월의 첫째 정일(丁日)의 향사 때에만 열린다.존덕사 동쪽에는 제수를 마련할 때 사용하는 전사청(典祀廳)이 있고, 서쪽에는 각종 서책과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있다.

 

전사청이나 장판각은 모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촐한 집들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지금까지 올라가면서 건물을 보았다면 이제는 건물에 앉아서 직접 이곳에서 기거하며 공부하던 사람의 눈으로 살펴보자. 병산서원의 건물들은 겉에서 보면 매우 무심히 지어진 듯 보이지만 실은 기거하는 사람의 눈이나 마음을 곳곳에 담고 있다.

 

 

 

 

 

 

 

 

 

 

 

 

 

 

 

 

 

 

사당  문 (神門)

사당으로 출입하는 신문에는 태극 문양을 그렸고, 길게 다듬은 기둥 초석에는 팔괘를 그려놓았다.

 

제향 건물인 신문(神門) 양 옆으로 꽃리 활짝 핀 배롱나무가 늘어졌다.

 

 

 

 

 

 

 

 

 

 

 

목판(冊版)과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藏板閣) 앞에도 배롱나무꽃이 만발 하다.백일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

 

 

 

 

 

 

 

 

 

 

 

 

 

 

 

 

 

 

습기를 피하기 위해 달았다는 판문(板門)이 배롱나무와 더욱 잘 어울렸다.

 

 

 

 

 

 

 

식공간인 병산서원 만대루

병산서원 강당인 입교당에서 앞으로 내다본 전경이다.  만대루 2층 누 7칸 기둥 사이로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얽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병산서원 뒤쪽에 있는 병존덕사와 고직사의 배롱나무의 모습이다.

한폭의 산수화같은 느낌을 만들어 준다.

 

 

 

 

 

 

 

 

산서원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높이 5m에 이르며, 나무껍질은 연한 붉은 갈색이며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무늬가 생긴다.
잎은 마주나고 두꺼우며 달걀 모양의 타원형으로 앞면에는 윤기가 있고, 뒷면에는 잎맥을 따라 털이 있다.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잎자루가 거의 없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7~9월에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리고 붉은색과 흰색 꽃이 피며 꽃잎은 6장으로 둥글며 주름이 많다. 열매는 타원 모양이며 10월에 익는다.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도 하고, 100일 동안 꽃이 피고지고를 반복한다고 하여 백일홍 이라고도 한다. 나무껍질 없이 매끈한 몸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청렴결백한 선비를 상징한다 하여 서원이나 정자 옆에 심어 왔다. 생장속도가 늦어 잘 보존된 군락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다.


 

 

 

 

 

 

 

 

 

 

 

 

 

 

 

 

 

 

 

 

 

 

 

 

 

 


강당 동쪽 옆을 돌아 들어가면,잘생긴 배롱나무가 심어진 언덕 위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사당인 존덕사(尊德祠)에는 북벽에 유성룡을 주벽으로 모시고,동벽에 유진(柳袗, 1582∼1635)을 종향(從享)하고 있다.

 

 

 

 

 

 

 

사당은 강당과 함께 맞은편 병산을 향하고 있는데, 산봉우리를 마주 대하지 않고, 산 능선의 약 7부쯤 되는 곳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건물과 자연이 하나가 되게 하는 한국건축의 특성으로, 산봉우리를 마주보며 향하게 건물을 배치하는 중국건축과 차이를 이룬다.

 

 

 

 

 

 

 

 

 

 

 

 

 

 

 

 

 

 

 

 

 

 

 

 

 

 

 

 

 

 

 

 

 

 

 

 

 

 

 

 

 

 

 

 

 

 

 

 

 

 

 

 

 

 

 

 

 

 

 

 

 

 

 

 

 

 

 

 

 

 

 

 

 

 

 

 

 

 

 

 

 

 

 

 

 

 

 

 

 

 

입교당 앞의 무궁화 꽃의 모습이다.

활짝 핀 무궁화가 서원과 함께 편안함을 준다.

 

 

 

 

 

 

 

 

 

 

 

 

 

 

 

 

 

 

 

 

 

 

 

 

 

 

 

 

 

 

 

 

 

 

 

 

 

 

 

 

 

 

 

 

 

병산서원은 도동서원, 도산서원, 소수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서원으로 손꼽히며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고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다고 한다. 

 

 

 

 

 

 

 

 

 

 

 

 

 

 

 

 

 

 

 

 

 

 

 

 

 

 

 

 

 

 

 

 

 

 

 

 

 

 

 

 

 

 

 

 

 

 

 

 

 

 

 

 

 

 

 

 

 

 

 

 

 

 

 

 

 

 

 

 

 

 

 

 

 

 

 

 

 

 

 

 

 

 

 

 

 

 

 

 

 

 

 

 

 

 

 

 

 

배롱나무와 함께 소소한 모습을 담아 보았다.

사원배롱나무원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는 풍경들이다

 

 

 

 

 

 

 

 

사람의 마음까지 화사하고 즐겁게 하는 배롱나무꽃...

 

 

 

 

 

 

 

 

 

존덕사의 신문 앞 계단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건물 지붕들 너머로 멀리 강이 보인다.

가장 중요한 공간인 강당 마루에서는 만대루가 길게 펼쳐진 지붕 위쪽으로 위엄이 서려 있는 병산과 하늘이 보인다.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길게 이어진 만대루(晩對樓)는 두보의 시 한 귀절인 “翠屛宜晩對”에서 따온 것이다.

만대루를 오르자면 통나무를 깎아 걸친 나무계단이 먼저 눈에 띈다.

 

 

 

 

 

 

 

 만대루와 입교당 중간 좌,우 자리한 동재와서재  는 유생이 머물었던 기숙사로 방에는 좌고우저 원칙에 따라 동재는 나이가 든 상급생,서재는 젊은 하급생이 머물었던 공간이다

 

 

신을 벗은 발에 닿는 나무의 감촉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만대루에 오르면 머리 위로 휘어진 굵은 통나무 대들보가 물결치듯 걸쳐 있다.

역시 자연스러움을 최대한으로 살려 편안함을 주고 있다. 

 

 

 

 

 

 

 

대루 2층 누마루

만대루 위층 누마루에 반듯하게 다듬은 기둥들이 형성하는 정제된 공간은 성리학적인 자연관과 조선 유학의 꼿꼿하고 청청한 맥이 건물에 살아나 있는 듯하다.

 

 

 

 

 

 

 

이곳에 서면 한쪽으로는 병산과 낙동강이 펼쳐지는 주변 풍광을 다 끌어안을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서원 일곽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만대루의 '만대(晩對)''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시「백제성루(百濟城樓)」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翠屛宜晩對)" 에서 인용한 것으로, '병산의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서야 대할 만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고도 남을 이 누마루에 앉으면 낙동강과 주변 병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시간과 공간을 모두 까맣게 잊게 할 만큼 사람을 취하게 한다산.휘돌아가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병산(甁山)은,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晴川絶壁)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그토록 맑은 물에 우뚝 솟은 절벽이라는 뜻일 게다.

 

 

 

 

 

 

 

 

 

 

가까이로 눈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원의 바깥 앞쪽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서원의 핵심 건물인교당(立敎堂)

만대루에서 바라본 입교당과 그 앞의 동재와 서재.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

길가에 활짝핀 배롱나무꽃이 나를 들뜨게 했다.

 

 

 

 

 

 

 

 

담장 너머로 배롱나무꽃이 늘어졌다.

 

 

 

 

 

 

 

 

 

 

 

 

 

 

 

 

 

 

복례문에 이어진 담장 구석에는 1칸짜리 뒷간이 있는데 서원 뒷간이어선지 깔끔하다.

 

 

 

 

 

 

 

 

 

 

 

 

 

 

 

 

직사 앞의 뒷간..

서원 입구 돌담 모서리에 있는 단정한 뒷간과는 달리 고직사 앞에는 짚과 대나무로 둘러친 야외용 뒷간이 있어 눈길을 끈다.서원에서 일하던 하인들이 사용하였을 것이라 여겨 ‘머슴뒷간’이라고도 부른다.

 

 

 

 

 

 

 

 

 

 

으째,,,,ㅎㅎ사진을 담다보니 두번 돌아보는것 같다,,덥다~덥웡,,머리에선 땀이 주르륵...

 

 

 

 

 

 

 

 

사청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곳.....

 

 

 

 

 

 

 

 

 

 

 

 

 

 

 

 

여기서 풍경은 그만 담아보고 병산서원 포인트 전경 찾아 발걸음 이동 하는데..아는 지인 가르쳐 주는대로 네비 물어보니 29킬로 달려한다..카카카

 

 

 

 

 

 

 

 

 

도착해서 산을 25분 정도 가파른게 기어올라 가야하는데,,보통 산행길 이라면 식은 죽먹기지만 날밤 세워 성주에서 안동으로 기운을 다 빼는 상태고..

안동 날씨 또한 38도을 가르키고 있었는지라,,죽을똥~살똥 기어 올라간다.한장의 사진 욕심에,,,살짝 미쳐야 열정이 뜨겁다쥐잉~~

 

 

 

 

 

 

 

 

 

포인트 들어섰는데 ,,배롱꽃 상황이 그다이,,,,_-_-

 

 

 

 

 

 

 

배산임수의 뛰어난 풍경이 아쉬웠었다 .한 장의 뷰 밖에는 나올 수 없는 제한 된 포토 존이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다.

 

 

 

 

 

 

 

 

산서원 전경

병산서원은 화산을 주산으로 하여 그 산자락에 남향을 하며 자리잡았다.서원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는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이 있다. 병산은 산의 형상을 따라 붙인 이름이다.

 

 

 

 

 

 

 

 

 

 

 

 

 

 

 

 

 

 

 

 

 

 

 

 

실로 오랫만에 이쁜딸과 함께하는 여행길 이다.

학생이다 보니 방학기간에 하루 시간을 내어 추억을 담아보았다.

 

함께라서 작은 일에도 웃음을 짖게 하는 시간들.. 딸과 마주잡은 손이 따뜻하니 좋다.

여행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함께 떠나주었던 딸이 마냥 감사한것을..

 

"오빠도 같이 왔으면 더 좋을텐데..."

그렇게,,,자식이 커가면서 함께 나눌수 있는 시간들이 줄어든는것 같다.

 

두손잡고 길을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여행길에 .... 딸과 함께 하는 나의 모습에 가슴 뿌뜻함이 묻어난다. 

더운날 신랑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두여자 사진 담아준다고 고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