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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과여행▒/2018년앨범

경북 안동여행 2부/배롱나무 꽃이 만개한 병산서원 【18년8월11일】

 

 

 

 

 

 

 

 

 

병산서원

 

채미정 사진 담고 그길로 병산서원 으로 간다.한국의 대표적 유교서원안동에 자리잡고 있는 병산서원 배롱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말이다.. 병산서원은 두번째 발걸음 하는곳이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다.서원은 본래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여 건립되었다. 이 서당은 읍내 도로변에 있어 시끄러워 공부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1572년(선조 5)에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 1542∼1607)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이 서당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7년 재건되었다.

 

 

풍악서당이 서원으로 된 것은 1614년(광해군 6) 사당을 건립하고 유성룡의 위패를 모시면서부터이다.

서원은 1863년(철종 14)에 조정으로부터 '병산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서원 47곳 중의 하나이다.

 

 

 

 

 

 

 

 

 

 

 

 

 

 

 

퇴계 이황에게 수학한 서애는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都體察使),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존망(存亡)에 처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1598년(선조 31) 이후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하회(河回)마을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건너 부용대 기슭에 있는 옥연정사(玉淵精舍)에서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며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하였다.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간의 전황을 기록한 책이다.

 

 

서애는 책 이름 『징비록』을 『시경(詩經)』에 나오는 "미리 지난 일을 징계해서 뒷날 근심이 있을 것을 삼간다[毖]"고 한 구절에서 빌어왔는데, 다시는 이 나라에 임진왜란과 같은 참담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됨을 후세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징비록』은 서애의 고택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忠孝堂)의 유물각인 영모각(永慕閣)에 전시되어 있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과는 화산(花山)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병산서원은 화산의 동쪽 기슭에, 하회마을은 그 반대쪽에 있다. '병산'은 강원도 산간 지방을 돌아 나온 낙동강 물줄기가 모처럼 넓게 트인 곳을 만나 센 물살을 만들며 항아리 모양으로 돌아 나가는 강변에 병풍[屛]처럼 산이 펼쳐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은 병산이 기암 벼랑 밑으로 흐르는 낙동강물에 깊게 그림자를 드리운 절경을 마주보며 자리잡고 있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가려면 예전에는 육로로 걸어가거나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넜는데, 요즈음은 버스까지 들어가는 찻길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도 옛 맛을 되씹고 하회마을과 병산서원과의 관계를 제대로 알려면 하회마을에서 논밭을 가로질러 산을 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옛 오솔길이 갖는 맛이 좋고, 산 너머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나 그 앞의 모래사장과 솔밭이 좋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은 세월이 흘러 희끗희끗한 청동색 반점의 기와지붕과 퇴락한 짙은 갈색 나무 기둥들로 찾는 사람들에게 회고(懷古)의 정을 불러일으키며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실제로 병산서원이 갖는 건축적 빼어남은 다른 곳에 있다.

 

 

흔히들 한국건축의 특징을 주변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고 하지만, 그 조화란 이미 있던 자연 환경을 읽어내어 거기에 합당한 건축을 어떻게 잘 앉히고 배치하는가에 달려 있다.

병산서원을 구성하는 건물 자체는 제향을 지내는 사당과 학문을 돈독히 하며 심신을 정진하는 강당, 재사 등 건물들로 되어 있어서 여타 서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와 같이 병산서원은 성리학적인 원칙에 바탕을 둔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러한 건물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빼어난 공간감을 보여주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병산서원은 조선의 유학자인 유성룡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키워냈던 안동의 대표적인 사설 교육 기관이다.

특히 병산서원은 서원 건축의 백미라 불리는데, 건물의 배치를 통해 병풍 속 그림처럼 주변의 풍광을 끌어들인 건축술은 놀랍기 그지없다.진분홍 백일홍이 매혹적인 여름날의 병산서원을 소개한다.

 

 

 

 

 

 

 

 

 

 

 

 

 

병산서원 배롱나무는 높이 6~9m, 가슴높이 둘레 80~90㎝ 크기로 모두 6그루이다. 가지가 넓게 퍼져 있고, 줄기가 뒤틀린 듯한 형태이다.

 

 

 

 

 

 

 

 

 

 

복례문(復禮門)을 지나면 만대루(晩對樓)가 나온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건축과 조형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배롱나무꽃의 화사함이 병산서원의
고풍스러움과 어우러지면서 보기 힘든 아름다움이 그곳이다.

 

 

 

 

 

 

 

 

 

 

 

 

 

 

 

 

 

 

 

 

떠나간 이를 그리워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배롱나무는 나목(裸木)이라 하여 
여인이 머무는 안채에는 심지 않았는 반면,

속을 숨기지 않는 강직한 선비 정신과
청렴을 상징하기 때문에 남자들 거처엔 많이 심었다고 한다.

 

 

 

 

 

 

 

 

 

 

 

 

사당  문 (神門)

사당으로 출입하는 신문에는 태극 문양을 그렸고, 길게 다듬은 기둥 초석에는 팔괘를 그려놓았다.

 

제향 건물인 신문(神門) 양 옆으로 꽃리 활짝 핀 배롱나무가 늘어졌다.

 

 

 

 

 

 

 

 

 

 

 

 

 

 

 

 

 

 

 

 

 

 

류성룡과 그의 아들 류진의 위패를
모신 곳이 병산서원이라 류성룡이 특히 배롱나무를 좋아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류성룡은 우의정까지 올랐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
정읍 현감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에 천거한 분으로 알고 있다.

류성룡이 없었다면 이순신도 없었으며,조선의 명운도 달라졌을 것이란 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입교당 앞의 무궁화 꽃의 모습이다.활짝 핀 무궁화가 서원과 함께 편안함을 준다.

 

 

 

 

 

 

 

 

 

 

 

 

 

 

 

 

 

 

 

 

 

 

 

 

 

 

 

 

 

 

 

 

 

 

나무가 크지 않아 가까이 볼 수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화사하고 즐겁게 하는 배롱나무꽃 만발한 병산서원 안동 

 

 

 

 

 

 

 

 

 

 

 

 

산서원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높이 5m에 이르며, 나무껍질은 연한 붉은 갈색이며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무늬가 생긴다.

잎은 마주나고 두꺼우며 달걀 모양의 타원형으로 앞면에는 윤기가 있고, 뒷면에는 잎맥을 따라 털이 있다.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잎자루가 거의 없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7~9월에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리고 붉은색과 흰색 꽃이 피며 꽃잎은 6장으로 둥글며 주름이 많다. 열매는 타원 모양이며 10월에 익는다

 

 

 

 

 

 

 

 

 

 

 

 

 

 

 

병산서원 뒤쪽에 있는 병존덕사와 고직사의 배롱나무의 모습이다.한폭의 산수화같은 느낌을 만들어 준다.

 

 

 

 

 

 

 

 

 

 

 

 

 

 

 

 

 

 

 

 

 

 

 

 

병산서원은 도동서원, 도산서원, 소수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서원으로 손꼽히며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고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다고 한다. 

 

 

 

 

 

 

 

 

 

 

 

 

 

 

 

 

 

 

 

 

 

 

목판(冊版)과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藏板閣) 앞에도 배롱나무꽃이 만발 하다.백일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

 

 

 

 

 

 

 

 

 

 

 

 

 

식공간인 병산서원 만대루

병산서원 강당인 입교당에서 앞으로 내다본 전경이다.  만대루 2층 누 7칸 기둥 사이로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얽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도 하고, 100일 동안 꽃이 피고지고를 반복한다고 하여 백일홍 이라고도 한다. 나무껍질 없이 매끈한 몸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청렴결백한 선비를 상징한다 하여 서원이나 정자 옆에 심어 왔다. 생장속도가 늦어 잘 보존된 군락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다.

 

 

 

 

 

 

 

 

 

 

 

 

 

 

 

 

 

 

 

 

배롱나무와 함께  모습을 담아 보았다.사원배롱나무원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는 풍경들이다

 

 

 

 

 

 

 

 

 

입교당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강학당(講學堂), 한마디로 수업을 받던 '교실' 이다.
입교당 중앙은 강학당,
동쪽으로 명성제, 서쪽으로 경의제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 라는 뜻의 입교당은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병산서원의 중심역할을 하는 곳이다.

 

 

 

 

 

 

 

 

 

산서원 전경

병산서원은 화산을 주산으로 하여 그 산자락에 남향을 하며 자리잡았다.서원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는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이 있다. 병산은 산의 형상을 따라 붙인 이름이다.

 

 

2년전 사진 한장 꺼내어 본다.

올해은 전경 패쓰

 

 

 

 

 

 

 

 

 


한여름 백일동안 핀다는 배롱나무의 나무 껍질은 깨끗한 청결과 고요함을 상징해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서원과 향교, 정자 등에 많이 심겨져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길게 이어진 만대루(晩對樓)는 두보의 시 한 귀절인 “翠屛宜晩對”에서 따온 것이다. 만대루를 오르자면 통나무를 깎아 걸친 나무계단이 먼저 눈에 띈다.

 

 

 

 

 

 

 

 

 

 

 

 

 

 

 만대루와 입교당 중간 좌,우 자리한 동재와서재  는 유생이 머물었던 기숙사로 방에는 좌고우저 원칙에 따라 동재는 나이가 든 상급생,서재는 젊은 하급생이 머물었던 공간이다

 

 

 

신을 벗은 발에 닿는 나무의 감촉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만대루에 오르면 머리 위로 휘어진 굵은 통나무 대들보가 물결치듯 걸쳐 있다.역시 자연스러움을 최대한으로 살려 편안함을 주고 있다

 

 

 

 

 

 

 

 

 

 

 

 

갓 피는 꽃봉오리 같은 화산을 등지고 절벽같이 펼쳐진 병산과 모래밭을 감고 흐르는 낙동강과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는 병산서원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광영지(光影池). 복례문과 만대루 사이의 연못.

 

 

 

 

 

 

 

 

 

병산서원의 정문인 복례문 앞에는 배롱나무가 무더기로 식재돼 있어서 7월부터 9월까지 붉은 빛을 토해낸다

 

 

 

 

 

 

 

 

 

 

만대루 기둥에 서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붉어지는 배롱나무꽃을 보면 폭염도 세상시름도 잊는다.

 

 

 

 

 

 

 

 

 

 

 

 

영지(光影池)

 

광영지는 '천원지방' 형태의 연못인데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둔 우리나라 전통 연못의 조성원리라고 한다.
 

 

 

서원 정문(正門)인 복례문(復禮門)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연못이 있고 맞은 편 한 단 높은 곳에 옆으로 기다랗게 만대루(晩對褸)가 서 있다.
배롱나무가 만개하여 연못에 온전히 낙화되어 있는 풍

 

 

 

 

 

 

 

 

 

 

 

 

 

 

 

 

 

 

 

 

 

 

 

 

대루 2층 누마루

만대루 위층 누마루에 반듯하게 다듬은 기둥들이 형성하는 정제된 공간은 성리학적인 자연관과 조선 유학의 꼿꼿하고 청청한 맥이 건물에 살아나 있는 듯하다.

 

 

 

 

 

 

 

 

 

 

 

 

 

 

 

 

 

 

 

 

 

 

 

 

이곳에 서면 한쪽으로는 병산과 낙동강이 펼쳐지는 주변 풍광을 다 끌어안을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서원 일곽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만대루의 '만대(晩對)''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시「백제성루(百濟城樓)」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翠屛宜晩對)" 에서 인용한 것으로, '병산의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서야 대할 만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배롱나무 꽃은 8월이 개화 절정 시기이며, 오래된 기와집이나 양반가 고택과 어울릴 때 가장 빛난다. 속마음을 다 드러내듯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면 무더위에도 왠지 마음이 흐뭇해지고 여유가 생기게 마련이다.

전국에서 정원과 배롱나무 꽃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지는 전남 담양 명옥헌이 으뜸이다. 고택에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사대부가 많은 영남권이 많다.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고도 남을 이 누마루에 앉으면 낙동강과 주변 병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시간과 공간을 모두 까맣게 잊게 할 만큼 사람을 취하게 한다.휘돌아가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병산(甁山)은,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晴川絶壁)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그토록 맑은 물에 우뚝 솟은 절벽이라는 뜻일 게다.

 

 

 

 

 

 

 

 

 

 

한여름 폭염에도 화사하게 피어나 아름다움을 한껏 빛내는 곳 배롱나무 꽃이 만발한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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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는 배롱나무가 피어있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
 분홍빛 꽃잎들이 병산서원의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풍경

 

 

 

 

 

 

 

 

 

 

 

긴 거리를 마다하고 달려간 곳 안동 병산서원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병산서원의 오래된 유래보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배롱나무꽃으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옮겨간다.

하회마을과 함께 꼭 찾아야 할 곳이 바로 병산서원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

길가에 활짝핀 배롱나무꽃이 나를 들뜨게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 병산서원에 있는 배롱나무로 안동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수령 약 390년 된 6그루의 배롱나무로 2008년 4월 7일에 안동시 보호수 제2008-165호로 지정되었다

 

 

 

 

 

 

 

 

 

선비들의 고장, 안동에는 정말 유명한 서원 둘 있다.
한 곳은 천원권 뒷면에서도 늘 보아 너무나 익숙한, 퇴계 이황 선생님을 모신 도산서원.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서애 류성룡 선생님과 그 아드님을 배향한 병산서원.

 

병풍 같은 병산과 낙동강의 풍경이 품 안으로 달려들 듯 펼쳐진다는 만대루에 앉아보고 싶은 마음
목백일홍꽃이 핀 병산서원의 풍경,그리고 체미정
두곳을 오늘 소개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