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과여행▒/2016년앨범

경주산행/남산 (금오봉 468m)【16년12월18일】

 

 

일 오전 늦긋하게 있다가

급발동 가까운 경주 남산으로 와이프 사진 담으려 가자고 하신다.ㅎ ..

굿와이프

사진으로 안구정화 하려 갑시다 ㅋ..그래서 요번에는 풍경 보단  나의사진이 많을듯 하다.

 

 

 

경주는 천년동안 지속된 신라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곳이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릴 적, 수학여행으로 한번쯤은 가보게 되는 곳이 경주인데, 그때는 그저 교실을 벗어나는 것이 좋았고, 유적지나 유물을 봐도 나 와는 상관없는 먼 옛날 이야기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 만나는 경주는 소중한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가 지켜야할 보물이 되었다.

과거의 흔적들을 차근차근 들여다 보면, 아름다웠던 천년의 시대가 어렴풋하게 보인다. 그렇게 경주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만나게 해주는 타임머신과 같다.

 

 

 

 

 

 

 

 

 

            경주 남산은 작지만 알찬 산이다. 높이로 따지면 금오산(468m)과 고위산(494m)의 두 봉우리가 모두 500m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서로 4㎞, 남북으로 10㎞ 정도의 산줄기에는 40여 개의 길이 거미줄처럼 구석구석 나 있다....
남산 전체가 야외박물관이란 말이 있듯 100여 곳의 절터와 그에 못지 않은 수의 석불·탑이 있어 문화유산 답사 산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산은 낮지만 산세는 옹골차고 길은 다양하다. 이런 이유로 '산림청 100명산'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石塔)과 석불(石佛)로서 특히 마애불(磨崖佛)이 많다.
이처럼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데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기도 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앙된 바위 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를 내려놓으니 부처님 옷자락 안일세...

구붓구붓한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삼릉 세 봉우리는 시간의 흐름 따위는 내 알 바 아닌 양 무덤덤하다.

 

 

 

 

 

 

 

 

골짜기마다 그윽한 소나무 향기

신라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세 왕릉이 계곡 초입에 있어 삼릉이라 불린다

삼릉계곡을 냉골이라고도 부르며  사계절  시원한 계곡물이 끊이지 않고

 소나무숲 사이에 솔향기에 등산매니아들의 마음을  더 없이  즐겁게 해 준다.

 

 

 

 

 

 

 

 

 

국립공원 100경에 선정된 남산 삼릉의 소나무숲은

누군가 가꾸어 놓은 조경목처럼 구불구불하여 자연의 미를 한층 더 돋구어 준다

 

 

 

 

 

 

 

 

 

 

기온의 변화로 이 골짜기에 안개가 가득 피어오르는 새벽엔 그 몽환적인 소나무숲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 오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낮은 소나무 군락사이를 지나 조금 오르노라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목없는 석불좌상'. 목이 잘린 채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는 부처님.

 

 

 

 

 

 

 

 

단단한 화강암을 쌓아 올린 불상,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불상의 불두... 머리가 없다.

천년신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신라시대 역사유물, 유적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경주 남산. 아직까지도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있다.

대부분은 석탑과 석불로 특히 마애불이 많은데, 이는 하늘의 신과 땅의 신들이 바위 속에 머물면서 백성들을 지켜준다 믿었던 신라인들의 바람이 투영된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삼릉의 상선암, 소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놀라운 광경을 보게된다.
1964년! 30미터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된 불상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냉골 석조여래좌상>

삼릉계에서 가장 먼저 볼수있는 삼릉계석조여래좌상

이 삼릉계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얼굴은 비록 사라지고 없지만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주름과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된 옷 매무새와 매듭을 보노라면 원래의 얼굴은 어떻게 표현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삼릉계곡의 답사는 목이 없는 처연한 불상으로 첫 길을 연다.

 

 

 

 

 

 

 

 

 

 

이 목 없는 불상들은 모두 1965년, 분황사 절의 우물 속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수 없이 많은 불상이 우물 속에서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삼릉계곡의 목없는 석불좌상을 지나 올라간다. 거리는 불과 40 ~ 50m, 굳이 올라간다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지척의 거리에 마애관음보살상이 나타난다.

 

 

 

 

 

 

 

 

 

<마애관음 보상 입상>

두번째로 맞은  마애관음보상 입상은  오래세월속에 많이 풍화가 된듯하다.
이 보살상의 특징은 입술에 있다고 한다..  입술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조각가가  붉은색 빛이 나는 철분이 있는 부분을 입술로 선택해서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애(磨崖)'라는 의미는 '갈 마(磨)'자(字)에 '낭떠러지 애(崖)'자(字)니 낭떠러지와 같은 절벽이나 바위벽에 무언가를 새겼다는 의미이다.

새겨서 만든 것이 관음보살상이므로 마애관음보살상이라고 이름 붙은 것. 불교 유적은 이처럼 한문으로 써 놓아 무척이나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형상을 글로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므로 생각외로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불상이 왜 관음보살일까?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약자이며, 산스크리트어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로 적어 놓은 것이기에 그 한문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불상이 관음보살이라는 증거는 왼 손에 들고 있는 정병(淨甁)이다. 관음보살은 대개의 경우 '깨끗하고 맑은 물을 담는 물병(정병)'을 든 채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했다는 관음보살의 정병(淨甁). 하여 이 비바람에 천 년의 세월을 버틴 입상은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주 남산을 오르는 삼릉계곡의 입구에서 산객(山客)들을 맞아 주는 관음보살의 온화한 미소를 바라보며 산을 오른다.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 경북 유형문화재 제21호>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더 푸른 가지를 달고 있는 소나무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자연이 빚는 시간의 예술이다.

 

 

 

 

 

 

 

 

 

 

 

 

 

 

 

 

 

 

 

 

 

 

 

 

 

 

 

 

 

 

 

 

 

 

 

 

 

 

 

 

 

 

 

 

 

 

 

 

 

 

 

 

 

 

 

 

얼굴 부분이 크게 표현된 것이 전형적인 고려시대 부처의 모습이다.

 

 

 

 

 

 

 

 

 

<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666호>

일명 ‘얼음골’이라고 부르는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불상은 보수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경주 남산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인다.

멀리 경주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조바심 내며 바둥대고 사는 삶을 되돌아본다.

 

 

 

 

 

 

 

 

 

 

 

 

 

 

 

 

 

 

 

 

 

 

 

 

 

 

 

 

 

 

 

 

 

 

 

 

 

 

 

 

 

 

 

 

 

 

 

 

 

 

 

 

 

 

 

 

 

 

 

 

 

 

 

 

 

 

 

 

 

 

 

 

 

 

 

 

 

 

 

 

 

 

 

 

 

 

 

 

남산은 산전체 둘레가 24km에 불과한 자그마한 산이다. 작지만 큰산이 남산이다.

이 자그마한 산에 무려 43개의 능선과 골짜기가 있다. 그냥 능선과 골짜기가 아니다. 147곳의 절터와 118채의 석불과 마애불, 96기의 석탑과 폐탑 등 총 672개의 유적 유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산전체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남산은 순례코스만 해도 70여곳. 제대로 돌아보려면 두달도 넘게 걸린다. 모퉁이를 돌면 부처를 만나고 한굽이를 넘으면 석불을 대하는 남산은 산 자체가 불국토다

 

 

 

 

 

 

 

 

 

 

 

 

 

 

 

 

 

 

 

 

 

 

 

 

 

 

걸터 않아 내려다보는 풍경이 시원하다.

 

 

 

 

 

 

 

 

 

 

 

 

 

 

 

 

 

 

 

 

 

 

 

 

 

 

 

 

 

금송정

금송정은 경주남산 금오산 정상 있던 정자이다.
옥보고가 거문고를 타던 곳이다. 신라 경덕왕때 위대한 예술가 이다.

 

 

 지리산 운상원으로 들어가서 50년동안 음악을 수학하여 신조,상원곡,중원곡,등 30여곡을 작곡하여 신라음악을 발전시킨 분이다.
금송정 앞에는 봉생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옥보고가 거문고를 탈때 봉황새가 날아와 춤을 추다가 앉은 바위가 있다고 전해진다.

 

 

세상이 전하기를 옥보고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려있다.
주위에는 많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경주의 동과 서의 풍광을 느긋이 즐기며 능선을 따라 금오봉 정상을 오른다지.

 

 

 

 

 

 

 

 

 

능선에서 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58호)

몇년동안 공사로 출입금지였다..그래서 오늘 산행 목적은 마애석가여래좌상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상사바위와포석곡
제9사지 석조여래입상

 

현재 지진으로 인해 통째 이다.

 

포석곡 제9사지에는 상사바위가 있다. 서쪽 자락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는 바위의 동면에는 작은 감실이 패어져 있다. 감실 옆에는 작은 소불이 놓여져 있고, 반대편에는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소불의 수인은 소인은 시무외인, 시여원인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감실에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이유로 감실 안은 까맣게 그을려 있다.

「동경잡기」기록에 의하면 상사바위는 금오산에 있다 그 크기가 일백 열발이나 되는데 그 생김새가 가파르게 솟아 있어 휘어잡고 오를 수 없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은 이 바위에 빌면 병이 낳는다. 산아당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양을 돌에 새겨 놓았다. 신라때 자손을 얻고 자하는 사람들이 빌던 곳이라 전하는데 가위와 칼자국이 있다. 위의 기록은 모두 이 바위에 대한 기록이다.

 

 

바위 높이는 약 13m, 길이 25m 정도이다. 감실의 크기는 가로 140㎝ 높이 56㎝ 깊이는 30㎝이다. 감실 옆에는 이 근처에서 발견된 80㎝ 크기의 작은 소불이 있고 반대편에는 320×140㎝ 크기의 남근석 세워져 있다. 감실 옆에는 약1m 크기의 소불이 있다.

 

 

 

 

 

 

 

 

 

 

 

 

 

 

 

 

 

 

흙냄새 맡으며 걷기를 한 참,

이정표가 나오고 갈림길을 지나 금오산(468m) 정상에 도착했다.

뾰족하지 않은 정상은 사방도 막혀있어 다소 심심하다. 올라오면서 본 풍광에 비하면 정상이라는 의미만 빼면 쉼터 같은 느낌이다.

 

 

 

 

 

 

 

 

 

 

 

 

 

 

 

 

 

 

 

 

경주를 떠올리면 아직 남산은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워낙 볼거리가 많은 명소라 굳이 산에까지 올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산행과 함께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남산만한 곳이 없다.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상선암에서 불과 150미터 정도  올라 오면  삼릉계곡 마애석가 여래 좌상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광배형의 높이 7m, 너비 5m 되는 거대한 자연 암벽에 6m 높이로 새긴 이 불상은 앉은 모습의 석가여래상이다.
남산의 좌불 중에서는 가장 큰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전체적인 느낌은 바위 자체가 약간 뒤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 조각되어 있는 불상은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너비 4.2m 되는 큰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설법인을 표시하고 먼 하늘에 시선을 두고 있다. 대좌의 연꽃은 2겹으로 피었는데, 꽃잎마다 보상화가 장식되어 있다.

이 곳에 있는 다른 불상들의 세련되고 단정한 얼굴과는 달리, 이 불상은 약간 투박한 느낌을 준다.

 


즉, 눈은 가늘고 코는 길며, 입술은 매우 두꺼워서, 얼굴 모습이 투박하고 소박한 지방 양식을 보여주는 듯 하다. 옷은 통견으로 옷주름이 가늘게 선각되었다.
몸체 뒤에는 다소 굵게 두광과 신광을 나타내었다.

머리만 사람이 조각을 했을 뿐 몸 전체는 천연의 바위 그대로 두었다. 즉, 몸체에서는 인공적 가공을 생략하고 선각으로 손발을 그림으로써 주위의 바위산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마애석가여래좌상.

경주의 서남향을 굽어보는 석가모니 부처불의 온화한 미소에는 중생을 보살피는 그윽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늦은 하산길

 해질 무렵 빛이 좋아서 마구~마구 담아주신 울신랑 흐뭇하이 웃는다.

인물사진 클릭씩 원본으로 올려본다^^땡큐

 

 

 

 

 

 

 

 

 

 

 

 

 

 

 

 

 

 

 

 

 

 

 

 

 

 

 

상선암 에서 스님이 내어주시는 커피한잔 으로 잠시 쉬어가면서...

 

 

 

 

 

 

 

 

 

 

 

 

 

 

 

 

 

 

 

 

바람에 묻어오는 따스함이 좋다.

어린 시절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주시던 엄마의 칭찬처럼 마음에까지 온기가 들어찬다.

겨울바람으로 채워진 가슴이 콩닥콩닥 설렌다.

 

 

 

 

 

 

 

 

 

 

 

 

 

 

 

 

 

 

 

 

 

 

 

 

 

 

 

 

 

 

 

 

 

 

골마다 절이 세워지고 바위마다 불상이 조성되며 수많은 탑이 세워져 신라인의 신앙과 예술이 남김없이 여기에 표현되었으니,

과연,"노천박물관"이며 자연과 예술이 조화된 유적지로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남산을 오로지 않고 어찌 경주를 보았다 할 것이며,몇 번 오르고 어찌 남산을 안다 할 것인가?

 

 

↙↘

(공감)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