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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과여행▒/2022년앨범

전남 담양 가볼만한곳 :: 한국 최고의 원림 소쇄원(瀟灑園)【22년12월18일】

 

 

 

 

 

남부지방에선 눈 보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오늘 하루 일정 빠뜻하게 움직인다
명옥헌 에서 10분가량 거리에 있는 소쇄원에 잠시 들려본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이다

 

 

 

 

 

 

 

 

 

 

 

여긴
맑고 상쾌한 이른 아침의 느낌을 풍경에 담고 싶다면 해가 뜨는 시점부터 오전 8시까지가 좋을듯 하다
오후 늦은 시간대라 오후의 빛은 태양의 고도가 낮기에 긴그림자로 인해 담아 내기에 애매하더라...


이곳은 8월 배롱나무 필적에 오면 더 아름다운 풍경일듯 하다

 

 

 

 

 

 

 

 

 

 

 

 

소쇄원 

주소: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입장요금: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

 

 

 

 

 

 

 

 

 

 

 

 

조선중기에 양산보가 조성한 민간 정원으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 당한 뒤 죽게 되자 세속에서의 생활을 접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담양 메타프로방스에선 23km거리라 자동차로 25분만에 도착하는 곳이다.

 

 

도로 맞은편에 주차장과 편의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길을건너 50m쯤 걸어가면 매표소가 있고 다리아래 오리가족이 서식하는 모습을 관찰할수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대나무 터널을 빠져나오면 우리나라 아름다운 정자로 손꼽히는 광풍각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담양 소쇄원은 양산보의 호 인 소쇄옹에서 비롯 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운영시간은 09:00~19:00 

 

 

 

 

 

 

 

 

 

 

 

소쇄원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 원림이다.

 

 

 

 

 

 

 

 

 

 

 

 

한국 민간원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명승 40호로 지정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내원內園의 면적은 1400여 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조성된 건축, 조경물은 상징적 체계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이뤄내며, 곳곳에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 있는 공간이다. 
물론 외원外園까지 포함하면 수 만평에 이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고흘러내려와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소쇄원”의 주요한 조경 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흘러내리는 폭포, 걸상모양의 탑암榻岩과 책상바위 상암床岩, 홈을 판 고목刳木으로 물을 이어가는 두 개의 연못, 上下池가 있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애양단愛陽壇, 계곡을 건너지르는외나무다리 약작略彴, 경사지에 적절히 단을 쌓아 꽃과 나무를 심고 담장으로 내부공간을 아우르고 감싸는 조화로운 곳이다. 

 

 

 

 

 

 

 

 

 

 

 

이러한 공간의 조성은 조선 중종 때의 선비로서 조광조의 제자인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정확한 조영 시기는 1530년대에 시작하여그의 자식과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스승이 기묘사화(1519년)로 사사賜死되자 현세적인 꿈을 접고 은둔하여처사處士로서의 삶을 산 것이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복원, 중수되어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는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라 할 수 있다. 

 

 

 

 

 

 

 

 

 

 

 

 

제월당霽月堂

제월당은 정자라기보다는 정사精舍의 성격을 띠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었다. 

당호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 하늘의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1017~1073)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나 「소쇄원도」에 나타난제월당이나 광풍각이 48영이나 『유서석록』에는 나타나지 않아 흥미롭다. 

물론 광풍각이 48영이나 유서석록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지는 하지만제월당은 『유서석록』이 제작된 당시인 1574년에는 아직 건립되지 않은 것이 아니냐라는 추정도 가능하다.소쇄원의 내원內園에 있는 요소들은 「무이구곡」에서 소재로 삼았을 법한 것들이 많은데, 즉 「무이구곡」에서 비롯되어 무이정사를 경영하였던 예와 같이 제월당은 4~5곡간에 정사를둔 것으로 구곡경영에서 그 예를 볼 수 있겠다.  

 

 

 

 

 

 

 

 

 

 

 

 


소쇄원(瀟灑園)이라는 어려운 한자이름이 뜻함은 빗소리 소(瀟), 혹은 물맑고 깊을 소(瀟)이고 灑는 쇄, 새, 혹은 사라고 읽을 수 있는데 물 뿌릴 쇄(灑)나 깨끗할 쇄(灑)라는 뜻과 음을 갖는다. 소쇄란 孔德璋의 <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말이다. 결국 굳이 소쇄원의 이름을 풀어쓴다면 “물 맑고, 시원하며 깨끗한 원림”이라 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면 ‘속세를 떠난 느낌이 있다’는 뜻으로도 말할 수 있겠다.

 

 

 

 

 

 

 

 

 

 

 

 

애양단愛陽壇

애양단은 겨울철 북풍을 막기 위하여 세운 단으로 손님을 맞는다는대봉대 바로 뒤편에 위치한다. 애양단에 관한 내용은 양천운의 「소쇄원계당중수상량문」에잘 나타나는데, 대봉대, 관덕사, 한벽산寒碧山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길이 약 10m, 넓이 약 7m의 마당을 높이 약 2m의 담장이 ㄱ자로 돌려져 남서향하고있으며, 추운 겨울철이라도 볕이 따사롭다. 

 

「소쇄원도」에는 이곳에 난대식물인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또한 『소쇄원사실』에서 소쇄공의행적과 관련된 내용을 읽다보면 그에게서 스며나는 관념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효’였다는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의관념적 동기였던 효는 겨울철 북풍을 막아주고 언제나 따뜻한볕을 준다는 의미부여의 과정을 통하여 애양단에서 구체화된 것을 읽을 수있다. 

 

 

효에 대한 의미는 부훤당의 의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애양단은 공간의 이중적 함축을지니고 있다. 즉 황량함을 담장으로 막아공간감(영역성)을 주고 햇살이 담에 비쳐 따뜻한질감을 주는 듯하다. 

 

 

 

 

 

 

 

 

 

 

 

 

 

소쇄원에는 몇 개소에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이들은 외원과내원을구분지어주는 경계이다. 

입구에서 북동쪽을 향하여 애양단까지 약 33m, 애양단에서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오곡문을 지나 매대까지 약 20m, 이곡으로부터 남서방향으로제월당까지 약 20m가 되는ㄷ자형의 담장이 축조되어 있다. 흙과 돌로 쌓여진 담장의높이는 2m이고 그 위에 기와가 덮여 낮아 방어를 위한 폐쇄적 기능을 하는것이 아니라골바람을 막아주고 경역의 한계를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매대 뒤쪽에 있는 담장에는 송시열이 썼다는 ‘瀟灑處士公之廬’라는 글이 있다. 

 

 

 

 

 

 

 

 

 

 

 

 

 

대봉대와 초정
사방 1칸의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초정 대봉대는 1985년경에 재건된 것이다.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 소정은 시원한벽오동나무의 그늘에 앉아 봉황새(귀한 손님)를 기다리는 집이다. 

 

「소쇄원48영」의 주요한 시점의 하나로 여기에서면 소쇄원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대봉대는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대를 쌓고 정자(소정)를 지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대봉대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그 곁에는 봉황새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벽오동나무와 열매를 먹이로 한다는 대나무를 심었다. 

또한 입구 쪽으로는 상지와 하지가 있고 바람을 막기 위해 애양단이 바로 앞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상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쇄원48영」중 많은 구절이 적용되는 장소 가운데 한 곳이며, 제 37영 ’동대하음桐臺夏陰’에서 동대 주변의 분위기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주변의 상황으로 보아 ‘동대’란 대봉대를 가리킨다. 
이 대봉대의 넓이는 4m×2.5m이다. 현재 대봉대의 초정 옆에 심어진 오동나무는「소쇄원도」에 근거해서 15대손 양재영씨가 최근에 심어 가꾸고 있다. 중국에는 봉황새가 모여 살았다는 봉황새와 봉황산이 많다 

 

 

 

 

 

 

 

 

 

 

 

 

광풍각光風閣

광풍각은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1칸 전후퇴의 팔작지붕 한식기와 건물이다

 

 

 

 

 

 

 

 

 

 

 

중안 1칸은 온돌방으로 뒷면에는 90cm 높이의 함실 아궁이가 있다. 
방의 문턱에는 머름대를 구성하였으며, 문은 삼분합의 들어열개문으로 되어 있다. 막돌허튼층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웠으며, 주두와 소로, 장혀, 굴도리로 결구된 평5량가구이다. 
천장은 연등천장과 우물천장을 혼합하였는데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은 눈썹천장으로 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서까래는 선자서까래이다. 

 

 

 

 

 

 

 

 

 

 

 

 

한국 민간원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명승 40호로 지정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인 이곳!!!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림으로 명승 40호인 소쇄원은 
양산보에 의하여 조영되었으며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광주호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원림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원림의 중심은 누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어디를 가든지 도처에 누정이 있다. 몇 백 년 전의 누정으로 부터 근대의 것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이름난 누정의 수가 885개나 될 정도이고 그 중의 반이 영남과 호남에 퍼 져 있는 것이었다. 

영호남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따뜻한 남쪽에서 더욱 발달하였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500년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담양 소쇄원

남쪽으로는 이 지방의 진산인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고 뒤로는 장원봉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곳으로 무등산 원효계곡이 광주호로 흘러 내려오는 증암천(자미탄)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의 경승지와 더불어 지역선비와 주민들의 휴식 장소로서 학문도야 장소로서 넓게 이용된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 취가정, 독수정 등 많은 독립된 정자와 원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