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경치 좋은 곳에 의자 몇 개 내놓고 앉는 거여.
이정록 시인의 시가 있는데 격하게 공감한다.
조만간 아무 데나 펼칠 수 있는 캠핑용 간이 의자를 마련할 셈이다.
여행하다 보면 시야가 확 틔여서 경치 좋은 곳에 하루 종일이라도 앉아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아무 생각없이 차을 세워 바라본다.
비 오는 논두렁 앉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맘에 드는 풍경을 보고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만 저건 너에 모습에 시선이 가는데 바라보는 것은 일상을 잠시라도 떠난 여행길에서 더 또렷이 들어온다.
소소한 황금보리 들판에 서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여유로움 .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풍경이 고맙듯 여행길에 피곤한 내 다리를 쉬게 할 때 최고인듯 하다.
오뉴월 해는 길고 양식은 떨어지고
허기진 배를 안고 풋보리를 훑던 날은
갈모봉 외진 골짜기 뻐꾸기가 울었지
한 목숨 섬기기가 왜 그리도 곤했던지
뼈마디가 저미도록 씨 뿌리고 김매어도
메마른 땅엔 거둘 것이 없었어
논밭에 매인 운명 고달픈 인생살이
묵혀온 한이 많아 보리피리 꺾어 불면
삘릴리 애잔한 소리 산과 들이 흐느꼈네.
몸을 꺾어야 제 소리를 내는 보리피리는그 소리 맑고 순수하고 아련 했었지만 이제는 아무리 가다듬어 불어도 예전 같질 않다.
보릿고개 잊고 사는 것이 무슨 큰 자랑이냐고 비아냥 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제 살을 떼어 생을 모자이크 하는 시인들은 그래서 보리밭 풍경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고향 냄새 같은 풋풋한 풋보리 내음 맡으며
보리대궁 높은 음을 내어 보노라면 고음이 떠올리는 옛 농부들의 한이 보인다.
해마다 봄이면 넘어야 했던 보릿 고개
그 눈물겨운 일들이 이젠
옛 이야기가 되었지
산까치 눈물짓던 신불산 자락에
아린 가슴을 적시며 애타게 울부짖고 있소
흘러간 세월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지고 있소
산등성이 오르는 비탈진
등 너머 밭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는다
까실한 보리 수염 자락엔
깜부기가 듬성듬성 허수아비인 양 서 있다
밭둑에 앉아 보릿대 꺾어
보리피리 흉내 내면
까만 오디 뽕나무 가지새로 익는다.
보리피리
노랗게 물든 들녘은 어느새 다시 푸른 벼로 가득 차겠다
바람이 흔들리는 보리가 정말 아름답다.
보리의 끝...
그리고 또다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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