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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과여행▒/2013년앨범

2013년9월14일=경주/불국사/보문단지 선덕여왕 공원

사랑해경주 불국사에 다녀왔어요 경주하면 젤 먼저 떠오르는게 수학여행과 불국사인거 같아요

간만에  불국사를 찾았습니다 ㅎㅎ 날은 비와화창 고르지 못한 날씨 였지만~ 그래도 경주하면 불국사 인지라 많은 사람이 찾았네요

 

9월은 경주을 많이 찾게 되는것 같습니다

사계절 다 아름답지만~그중에서 불국사 빼놓을수가 없지요

해마다 두셋번 가 보는 불국사 단풍이 어느 정도로 궁금해서 가볍게 발걸음 해 보았답니다.

사진으로 보아시피 한달 넘게 있어야 물들인 단풍을 볼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단풍시기가 경주 불국사 제일 늦다고 하지요

 

<옆에서 본 범영루>

[불국사 고금역대기]에 의하면 이자리에 있던 원래의 건물은 '우경루'로 좌경루와 함께 경전을 보관하였던 곳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1969~1973년 불국사 복원공사때 다시 세운 것으로, 내부에 법고가 놓여있다.
범영루 건물을 받치고 있는 수미산 형태의 돌기둥은 8세기 중엽 불국사가 건립되었을 때 세워진원래의 건물을 받치고 있던 기둥으로,
돌을 목조 건축 부재인 청자 모양으로 다듬어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이다.

 

범영루 왼쪽에 있는 <연화교 및 칠보교>


극락전 구역으로 오르는 석조계단으로, 아래쪽의 연화교는 10단, 위쪽의 칠보교는 10단이다.
청운교 및 백운교보다 규모는 작으나 형태와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계단은 45도 각도의 안정된 기울기를 보이며, 연화교와 칠보교가
이어지는 부분은 무지개 모양의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연화교의 층계에는 계단마다 넓은 연꽂잎이 새겨져 있는데,
계단을 밟는 사람이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석축, 청운교 및 백운교와 함께 8세기 중엽에 건립되었으며,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의 계단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곱게 물들인 단풍 여기가 사진작가분들 포토존이지요

 

 

 

 

 

 

 

 

 

 

 

 

 

 

 

 

 

 

 

 

 

 

 

 

 

 

 

 

불국사 비로전(毘盧殿)

불국사 복원 시에 중창된 건물로 대웅전 뒤쪽에 관음전과 함께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터를 발굴할 때 불국사의 건물 중 가장 오래된 형식의 유구였음이 확인되었고 건물 안에는 비로자나불이 안치되었습니다. 건물의 양식은 고려시대 양식이고 규모는 정면5칸, 측면3칸인데 측면의 중앙 칸이 비교적 넓어 건물평면은 정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입니다.

건축의 공포는 주심포식으로 팔작집형식을 취하였고 내부의 가구구조를 특이하게 한 일례라 할 수 있습니다.

 

 

 

 

 

무설전(無說殿)의 뒷쪽

 

관음전과 비로전을 지나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면 나한전 뒷뜰에 이렇게 돌탑을 쌓아 놓은 장소가 나옵니다.

이곳을 소탑지라 하며 이런 안내표지가 보이는군요.

신라 시대에는 탑이 마치 기러기떼가 날아가듯 서라벌 곳곳에 즐비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법화경'에서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모래 탑을 쌓더라도 한량없는 복락을 받아 부처가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돌라 작은 탑을 만들어서 자신의 소원을 기원하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불국사 나한전에는 많은 참배객이 자연적으로 하나 둘씩 돌탑을 쌓아서 소망을 기원하는 '소탑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탑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소탑지를 조성하여 누구라도 탑을 쌓는 공덕으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대웅전을 바라보며 오른쪽(서쪽) 회랑은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에 위치하며 그 끝에는 범영루가 있습니다.

그 범영루 못 미치는 회랑의 꺽어지는 부분에는 거북등에 얹혀진 법고가 있습니다.  

 

 

극락전을 지나 직진을 하게 되면 만나게 되는 불국사사리탑(佛國寺舍利塔). 

불국사사리탑은 고려 초기의 부도이며 높이가 2.06m입니다. 현재는 사리탑이 원래의 위치에서 옮겨져 보호각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표면장식이 아름답고 단아하여 1905년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33년 반환되었다. 이 부도는 외형적으로는 석등과 비슷한데, ≪불국사사적기 佛國寺事蹟記≫에 ‘광학부도(光學浮屠)’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지칭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조는 상대석·중대석·하대석 위에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놓았다. 기단부(基壇部)는 방형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8각형의 기대석(基臺石)을 놓았는데, 각 면에는 상하로 테를 돌린 사이에 안상(眼象) 1구씩을 조각하였으며, 지선(地線)에서는 꽃무늬문양이 솟아 간지(間地)를 메우고 있다. 그 위의 복련석(覆蓮石)에는 소박하고 큼직한 단판연화(單瓣蓮花) 여덟 잎을 조각하였고, 중대석은 고형(鼓形) 표면에 구름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의 하부에는 단판연화 아홉 잎을 돌렸고, 연판의 가운데에는 꽃문양 형식의 원좌(圓座)가 있으며 상면에는 탑신 주위로 연자(蓮子:연꽃의 열매)가 오목새김되었다.
 
탑신은 배가 부른 원통형의 특이한 형태로 상하에 연꽃과 보상화(寶相花)를 조각한 기둥형을 세워 네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각 면에는 얕은 불감(佛龕)을 개설하여 그 안에 여래좌상(如來坐像) 2구와 보살입상(菩薩立像) 2구를 돋을새김하였으며, 감실 상부에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탑신 상부에는 연판이 돌려진 위에 개석(蓋石)이 얹혀 있다. 옥개석은 추녀 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을 향하면서 6개의 능선이 소멸되어 6각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 하면에는 16판 연화가 중첩되었고, 옥개석 상면의 낙수면은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 옥개석 정상에는 낮게 6각형의 노반(露盤)이 놓이고 그 위에 횡대(橫帶)와 꽃문양이 조각된 편구형(扁球形)의 복발(覆鉢)이 얹혀 있다.
 
한편, 탑신 상부 중앙에는 지름 5㎝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어 이 구멍이 옥개석을 관통하고 있는데, 찰주공(擦柱孔)으로 생각되며, 앙련석(仰蓮石) 중앙에는 홈이 패어 있어 사리공(舍利孔)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옥개석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석질이 연약해서 곳곳에 풍화현상이 있지만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부도는 신라시대 석조부도의 전형양식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에서 벗어나 특이한 형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국보 제 20호 경주 불국사 다보탑[多寶塔] - 1962년 12월 20일 국보지정.

 

다보탑과 석가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법화경(法華經)》에 의하면 “부처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이 경을 설파할 때 다보여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둔 탑이 땅 밑에서 솟아나오고, 그 탑 속에서 소리를 내어 부처의 설법을 찬탄하고 증명하였다”한다. 

이를 근원으로 세워진 탑이 다보탑이다. 이 탑의 구조는 대개 옥개(屋蓋) 아래 상층(裳層)을 붙인 조형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서는 732년에 무현의 남동쪽에 처음 세웠으며, 한국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에 세웠다. 

 

석가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으로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왠~지 거닐면 맘이 편해지는 좋운걸요~

 

 

 

 

 

 

 

우리나라 국보 청운교와백운교 입니다

 

 

 

<청운교와 백운교>


대웅전 구역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불국사고금역대기] 등의 옛기록에 의하면
위쪽이 청운교, 아랫쪽이 백운교이다. 계단을 '다리' 라고 한 것은 속세로 부터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청운교와 백운교가 이어지는
부분의아랫쪽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홍예교와 홍예문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석축, 연화교 및 칠보교와 함께 8세기 중엽에 건립,통일신라의 계단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신라시대의 뛰어난 건축물이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기도 한 불국사,
구석구석 신라 문화의 높은 품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10월 다시 발걸음 해 보리라~생각하면서.. 빠잉고고씽

 

 

 

 

비가오거나 흐린날씨에 내가 자주 가는곳입니다.

경주 보문단지 산보를 하다가 올해 공원을 알게 되었는데요 아시는 분들도...

보문호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은 분들은 이런 곳도 있으니 산보때 구경삼아 쭈~욱 가보시죠^^

 

 

 

 

 

선덕여왕 포토존 이랍니다

 

 

 

 

백허그경주 보문관광단지 내에 설치된 선덕여왕 포토존이 또다른 인기테마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선덕여왕 포토존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계획 공모로 선정된 관광특구 활성화사업으로, 선덕여왕과 신라 중신들의 회의 장면을 연출한 청동 조형물이다.

관광객들은 보문호수 너머 명활산성을 배경으로 선덕여왕의 옆자리와 대신들의 빈 자리에 앉아 옛 신라시대 회의에 참석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 知幾三事)’와 황룡사·첨성대 건립 등의 역사적 사실과 업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야간에는 포토존을 밝히는 조명이 설치돼 보문관광단지의 새로운 야간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최근 보문관광단지에는 탐방로를 따라 경관 데크 교량, 징검다리, 금강송 길, 전망 데크 등 보문호수를 조망하는 산책코스가 조성돼 있다.

최정환 문화관광과장은 “아름다운 경관의 보문호수에 늦여름 시원한 호수바람을 쐬러 시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며 “선덕여왕 포토존에서 많은 추억과 신라의 역사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