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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과여행▒/2015년앨범

충북 영동/가슴 아픈 비극의현장/노근리 평화공원【15년6월7일】

 

 

6월은 호국의 달이지요..
나라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달인 것같습니다.

그래서 무주에서 영동으로 차을 돌려봅니다.

 

 

 

 

 

가슴 아픈 비극의현장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7월25일 부터 7월29일 까지 충북 영동군 하가리 와 황각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아래 쌍굴 일대 4만여평에는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근리 평화공원이 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6.25전쟁발발직후 노근리 철교밑 쌍굴 다리속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마을 주민 수백명을 향하여

 미군들이 무차별사격을 가하여 삼백여명이 살해된 사건을 알려주는 곳이다.

 

 

 

 

 

 

 

영동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는 충호탑은 쌍굴다리 와 나란하게 서 있다.

 

노근리의 아픔을 가장 가까이 에서 만나려 이곳을 찾으신 분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그시 눈감아

우리에게 인권이 일상으로 통하는 오늘을 전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함도 좋은것 같다.

 

 

 

 

 

 

노근리평화공원은 미군이 저지른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안타까운 노근리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는 과정과 잊힌 과거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평화기념관, 실제 사건이 벌어진 쌍굴다리를 비롯해 위령탑과 조각공원, 전망대 등의 시설을 갖췄다.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로 불리는 개근철교 주변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영동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당시 임계리 일대에 모인 피란민들을 남쪽으로 피란시키는 과정에서 미군은 방어선을 넘는 자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무차별 기관총 난사로 무고한 민간인 몇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화기념관에는 사건의 개요와 함께 1960년대에 시작된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 요구부터 1999년 9월 AP통신 보도로 노근리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경위, 이후 진상조사와 2001년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감 표명, 2004년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까지 50년의 길고 길었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품명:미완의 공존

이 작품은 중앙부분의 반달은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묘사하고 있고

반달을 관통하고 있는 총탄은 강한 긴장감을 유도하고 있으며,

그 위의 나비는 아픔을 절실하게 느낄수 있는 역설적인 표현의 평화를 상징하고 있다.

 

 

 

 

노근리평화공원 길 건너편에는 비극적인 사건의 현장인 개근철교가 있다. ‘이곳은 노근리 사건의 현장입니다’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판이 마치 절규하는 듯하다.

철교에는 당시 총탄의 흔적이 흰 페인트 속에 갇혀 있다. 이 좁은 터널에서 몇백 명의 무고한 생명이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죽음을 맞이했던 몇백 명의 안타까운 비명은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열차만이 무심히 철교 위를 지난다.

 

 

 

 

 

 

 

 

 

 

 

 

 

 

당시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당한 피난민들은 철교에서 뛰어내려 굴다리(노근 쌍굴)로 숨었으나

미군은 굴다리 앞 야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29일까지 굴다리를 빠져 나오는 양민을 차례로 쏘아 죽였다.

이 사건으로 영동군청에 신고된 피해자 수는 사망 177명, 부상 51명, 행방불명 20명 등 248명이다.

 

 

 

 

 

이에 노근리 주민들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지난 1960년부터 진상규명과 배상을 요구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

그러나 1999년 9월 AP통신 보도로 노근리 사건이 세계의 주목을 받자 그해 10월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협의에 착수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의 진상규명 지시가 있은 후 노근리 사건 정부대책단 및 진상조사반이 구성되었다.

그 결과 2004년 2월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2004년 7월부터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됐다. 이후 피해자 가족들은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현재까지 계속 중이다. 한편, 학살사건이 일어난 현장인 개근철교(쌍굴다리)는 지금도 탄환이 잔뜩 박힌 채 보존되어 있으며, 사건 현장 근처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세워져 있다.

 

 

 

 

 

 

죽은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있는 사내아이를 표현한 조각상

 

노근리사건 당시 갓난 남자아이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총탄에 맞아서 이미 숨진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 모습을 재현.

 

이 모자상은 노근리사건 당시의 비참함과 전쟁의 비극적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조각품이다.
 

 

 

 

 

 

 

 

 

 

 

 

 

 

무지개는 희망이다.
희망은 인간의 두 발이 딛고 선 땅에서 시작된다. 희망의 이면에는 절망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영동사람들은 억센 생활력으로 절망을 걷어내고 터전을 일궈왔다.

 

 

 

 

 

말조차 꺼내기 무서웠던 노근리 사건의 아픔을 마음속으로 꾹꾹 다지며 언젠가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야속한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그 한과 억울함은 노근리 평화공원으로 달랠 순 없지만, 더 이상 숨죽이며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눈길이 서로 다를 뿐 희망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작품명:시선

 

처참했던 사건 당시의 상황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남매의 모습과 폭격하는 비행기, 그리고 잊혀져가는 기억을 상징하는 액자형의 틀을 두조형의 공간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노근리평화공원 평화기념관 내부

 

 

 

 

 

 

 

 

 

 

 

 

 

 

 

 

 

 

 

 

 

 

 

 

 

 

노근리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와 노근리평화공원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오래전의 추억속의 건물을 보고 보리가 익어가는 길을 걸으며 전쟁의 아픔을 생각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