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통도사 극락암 산수유꽃 【22년3월22일】
경주 오릉 목련 풍경 담고,
시간이 남길래 양산 통도사로 가 본다
영축산 산세를 올곧은 자세로 허리를 펴고 좌정한 부처의 모습과 비유한다면 지금까지 둘러본 암자들은 무릎과 허리 부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축산 깊은 곳에 있는 극락암과 비로암은 단전(丹田)에 해당하는 암자고, 백운암은 심장에 가까운 곳에 있다.
반야암에서 나와 극락암으로 가는 길 앞에 섰다.
푸른 솔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무풍한송로 소나무들이 길을 껴안듯 가지를 뻗어 에워싸고 있는 느낌이라면 이곳 솔밭은 길을 수호하듯 하늘로 줄기를 뻗어 올리고 있다.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보이고 길 위에는 가지 사이를 통과한 햇살이 가야 할 걸음을 비춘다
옛 스님들이 다니던 산속 숲길을 잇는다는 통도사,
산문 안쪽 19여개 암자를 연결해 사색의 길을 되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담장 위에 내러앉은 노란 산수유.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과 함께 암자로서 매우 규모가 큰 극락영지는 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여 연못을 가로지르는 홍교와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이다.
통도사에는 19개의 크고 작은 암자들이 있다.
암자마다 풍경들이 빼어나고 고즈넉 해서 산책하기 에도 너무 좋다.
오늘 찾은 암자는 극락암 산수유
우리 시대 고승으로 이름 높은 경봉 스님이 기거했던 극락암 삼소굴의 돌담장 옆에도 노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통도사와 그 암자는 따스한 봄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매화와 산수유는 절정을 넘어서고 벚꽃은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이 고요한 절집들을 찾아 봄의 향기를 담아 왔다.
극락암은 통도사 암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암자이다
통도사는 암자까지 합하면 전체 면적이 1650만㎡(500만평)에 달해 하루이틀 여정으로는 다 돌아볼 수가 없다.
통도사 암자 중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을 꼽는다면 서운암과 극락암이 빠지지 않는다.
서운암은 진귀한 볼거리가 여럿이다. 가장 먼저 2000여개 장독이 눈길을 끈다.
햇빛에 반짝이는 장독과 그 옆의 매화, 그리고 절집이 어우러진 장면은 봄 풍경의 백미라고 하겠다.
작은 불상 3000좌를 모신 삼천불전, 도자로 빚은 대장경판 16만여장이 안치된 장경각도 장관이다
극락암 극락영지와 홍교
극락암(極樂庵)의 봄은 화려하다.
꽃비를 뿌리는 벚꽃이 만발하는 시기면 극락암은 이름 그대로 극락에 와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홍교에 올라 멀리 영축산과 가까이 극락암 풍경을 즐기면 좋은곳이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극락암의 본모습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극락암 유래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332년(고려 충혜왕 2년)에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창건자는 명확하지 않다. 이후 1758년(영조 34년)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감원인 명정 스님은 극락암을 새로 중건할 때 절터에서 신라 시대 기와와 유물들이 나온 것을 볼 때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암자라고 믿고 있다.
극락암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고승이 한 명 있다.
바로 한국 근현대불교를 대표하는 경봉(鏡峰) 스님이다.
스님의 일화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해우소(解憂所)와 휴급소(休急所)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사람들이 화장실을 돌려 말할 때 자주 쓰는 말은 바로 경봉 스님이 만든 것이다.
6.25 전쟁이 끝난 뒤 경봉 스님은 “휴급소에 가서 다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걱정 버리고 가면 그것이 바로 도를 닦는 거지”라며 화장실에 이름을 붙여줬다.
하찮게 여기는 일상에서 도(道)를 닦고 수행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이 유쾌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준다.
스님은 7세 때 밀양의 한학자 강달수(姜達壽)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으며, 15세 되던 해 모친상을 겪자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16세 때 통도사 성해(聖海) 스님을 찾아 출가했다.
1908년 3월 통도사에서 설립한 명신학교(明新學校)에 입학하고, 그해 9월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청호(淸湖) 스님을 계사(戒師)로 사미계를 받았다.
1912년 4월 해담(海曇) 스님으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은 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 불경 연구에 몰두했다.
경봉 스님은 강원을 졸업 후, 하루는 경을 보다가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본디 반 푼어치의 이익도 없다(終日數他寶 종일수타보, 自無半錢分 자분반전분)”는 경구를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참선공부를 하기 위해 내원사 혜월(慧月) 스님을 찾아 법을 물었으나 여전히 마음속 의문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에 해인사 퇴설당(堆雪堂)으로 가서 정진한 뒤,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석왕사(釋王寺) 등 이름난 선원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했다.
이때 김천 직지사에서 만난 만봉(萬峰) 스님과 선담(禪談)에 힘입어 ‘자기를 운전하는 소소영영(昭昭靈靈,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움한 주인)’을 찾을 것을 결심하고, 이곳 극락암으로 자리를 옮겨 3개월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 눕지 않고 늘 좌선함) 하면서 정진을 계속했다고 한다.
경봉 스님은 극락암에서 1925년 어려운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만일염불회를 개설한 데 이어 1927년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를 극락암 무량수각에서 처음 시작했다.
현재 통도사 본사에서 주관하고 있는 화엄산림법회가 극락암에서부터 그 시작을 알린 셈이다.
낮에는 무량수각에서 화엄경 경문을 하고 밤에는 삼소굴(三笑窟)에서 정진하다 스님은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 방안에 촛불이 흔들리는 소리를 내며 춤추는 것을 보는 순간 그동안 품어왔던 의문 덩어리가 일순간에 녹아내렸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 같은 마음이 식은 후 오도悟道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경봉 스님이 남긴 오도송(悟道頌)은 스님이 정진하던 삼소굴 주련(柱聯)에 남아 있다.
내가 나를 바깥 것에서 찾았는데
我是訪吾物物頭 아시방오물물두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도다
目前卽見主人樓 목전즉견주인루
하하 이제 만나야 할 의혹 없으니
呵呵逢着無疑惑 가가봉착무의혹
우담바라 꽃빛이 온 누리에 흐르는구나
優鉢花光法界流 우발화광법계류 - 경봉 스님 오도송
고승의 깨달음을 감히 범인(凡人)이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주련에 남은 오도송을 눈으로 훑으며 그 뜻을 나름 짚어보려 애쓴다.
낮은 지붕에 흔한 단청조차 칠하지 않은 작은 전각인 삼소굴은 경봉 스님이 1982년 열반에 들 때까지 지내던 곳이다.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 몸 하나 겨우 뉠 만한 작은 공간의 방이 있다. 툇마루에 앉아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봤다. 햇살을 받아 생명력 가득한 극락암에서 유독 이곳 삼소굴만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삼소굴의 ‘삼소’는 세 사람이 웃는다는 의미로 ‘호계라는 시냇가에 세 사람이 웃는다(虎溪三笑)’라는 말에서 따와 경봉 스님이 직접 지은 것이다.
‘호계삼소’는 유교·불교·도교의 진리가 그 근본이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다. 중국 송나라 진성유(陳聖兪)가 지은 여산기(廬山記)에 나온다.
현재 삼소굴에 걸려 있는 편액은 조선 말 팔능거사(八能居士)로 전국에 명성을 날리던 서화가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의 글씨다.
극락암에 와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삼소굴에서 정진한 스님은 1982년 시자(侍者, 큰 스님을 모시고 시중드는 스님)가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라고 물어보니, 웃으며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라는 게송(偈頌)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스님의 마지막을 지킨 시자가 바로 명정 스님이다. 명정 스님은 극락암 감원으로 삼소굴 옆 원광재(圓光齋)에 거처하고 있다. 스승은 떠났지만, 여전히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원광재 역시 석재 글씨가 편액으로 걸려 있다.
원광재를 나와 다시 삼소굴 툇마루에 잠시 앉아 극락암을 바라봤다.
잔디마당 너머로 무량수각이 보이고 그 아래 처음 마음을 뺏겼던 영지의 아름다운 풍광이 새삼스럽다.
진리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려는 듯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가 바람에 향을 날린다.
그리고 곧 뜨거운 여름이면 이곳에 연꽃이 진흙 속에서 생명을 가득 피우게 될 장면을 마음속에 그렸다
그윽한 정취로는 극락암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영축산 정상의 바위들과 그 아래 소나무숲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그 고목과 바위 사이에 절집이 보일 듯 말 듯 고즈넉이 앉아 있다
영축산 그림자가 비친다는 영지(影池)의 홍교(虹橋·무지개 다리) 옆 벚나무 곧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극락암 삼소굴과 산수유
해가 저물자 산사에 은은한 종소리가 퍼져나간다.
그러자 봄꽃 향기도 더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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