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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과여행▒/2013년앨범

2013년10월21일=포항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거리/호미곶 해국 만나려가는 날.

시간이 멈춘 곳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역사의 흔적을 찾고 싶다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느껴지는곳,
오전에 잠시 시간내어 집에서 30분거리 발길을 돌려본다.
오늘은 등산복이 아닌 사복으로~ㅎㅎㅎ
날씨가 비가올듯 말듯 흐린면서 잔득 구름이 끼어 잇는날~이런날은 갠적으로 바다을 찾곤한다.
출렁이는 파도를 뒤로하고 저번 추석날 시댁식구들과함께 구경했지만~일단은 시댁이니까!!ㅋ


구불구불하게 난 골목을 따라 들어서니 양쪽에 마주보도록 세워진 펄럭이는 현수막들은 조금 다른,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이곳은 구룡포읍 장안동 일대에 위치해 있는 근대 문화역사 거리로써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어족지언이 풍부한 포항으로 모여들어 선박경영,선박운반업 등으로 부유해진 일본인들이 여관,상점,이발관,병원 등을 짓고 살던 변화가였다.

구룡포항 주민들 사이에서 일본인들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과 역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 대립이 팽배하였다.
하지만,포항시는 당시 일본인 생활모습의 일면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우리나라의 삶을 유추해 보는 산교육장으로 삼고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걸쳤다.

2012년 개관한 일본인 가옥거리는 10년전에 100여채가 남아 있었지만,현재 50여채로 줄어들어 1900년대 초반에서 시간이 먼춘 듯 조용히 자리 잡고있다.
거리곳곳에 일제 강점기 때의 사진이 걸려있어 마치 빛바랜 사진 조작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100여년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일본 가옥이 남아있는곳이다.

 '여명의 눈동자' 일본거리 촬영을 이곳에서 했으며, 1900년대 초반 한국 속의 일본인들의

생활을 볼수있는곳이다.

 

 

 

구룡포 근대화문화거리의 입구

 

구룡포 시내를 지나다 보면 늘어선 상가 사이로 언뜻,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물고기 모양의 일본식 연이 좌우로 날리는 정문 뒤로 보이는 일본식 거리,바로 구룡포 근대문화역사 거리 이다.
1910년경 적은 어확량 때문에 배고픔에 시달리던 일본 어부들이 하시모토 젠키치와 도가와 야스브로를 필두로 풍부한 어확량을 자랑하는
구룡포로 건너와 만든것이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시작이었다.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거리에서 충혼각 까지 오르는 67개의 계단에는 왼쪽에 61개,오른쪽에 59개 총 120개의 돌기둥이 있다.
이 돌기둥에는 원래 1944년 구룡포로 이주해 마을을 세우는 데 공허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해방 후 1960년경 구룡포 주민들이 나라를 위해
산화한 순국 선열및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한 충혼각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한국인 후원자들의 이름을 새기기 위해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부분을 뒤로 돌려보리고 반대쪽의 일본인들의 이름을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고 한다.
언덕위에 잇는 도가와 야스브로의 공덕비 또한 해방 후 구룡포 청년들이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이후 시멘트를 걷어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잇었지만 애증의 역사도 역사의 한 부분이니 남겨두자는 결정이 났다 한다.
구룡포 시내를 걷다 보면 상가들 사이에 이국적인 풍경이 보인다.절대로 잊혀질수 없는 애증의 역사가 보인다.

 

 

 이곳은 박물관도 아니고 전시관도 아니예요. 해방 후에 일본 사람이 물러간 후 그 사의 흔적 속에서 마치 시계가 멈춘 것처럼 우리 동네로 남아있는 이곳.

 우리의 뼈아픈 근대사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이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2013년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네 거리로 남아있다는 것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둔 곳

 

포항 구룡포에는 '일본인 가옥거리'라고 불리던 곳이 있다. 이름 그대로 일본 가옥들이 몰려 있던 곳이다.

 수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와서 구불구불 골목을 살피곤 했는데 지난 2012년 구룡포 근대역사관 개관과 함께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라는 이름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후 구룡포를 찾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어째서 이곳에 일본식 가옥들이 몰려 있는 것일까. 낡은 건물들은 대부분 보수공사를 마쳤지만 가옥의 크기 등을 고려할 때 제법 부를 갖춘 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입성한 것은 100여년 전 쯤으로 알려진다. 가가와현(香川縣)의 고깃배들이 물고기떼를 좇아 이곳까지 오게 된 것. 이후 많은 일본의 어부들이 구룡포로 이주했다.

 1932년에는 그 수가 300가구에 달했다니 상당한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의 자료에 따르면 가가와현의 어부들이 처음 한반도 해역에 나타난 것은 1880년~1884년 경으로 알려진다.

 당시 가가와현의 세토내해는 어장이 좁아 어부들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힘없는 어부들은 더 넓은 어장을 찾아 먼 바다로 나섰고 풍부한 어족자원을 품은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고기가 풍부하니 돈이 모일 수 밖에 없었을 터다. 선박경영과 선박운반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으로 부유해진 일본인들은 집을 지었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음식점, 제과점, 술집, 백화점, 여관 등이 들어선 거리는 날로 번창했고 구룡포 최대 번화가로 성장한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들로 당시 구룡포의 부흥기를 엿볼 수 있다.

 약 500m의 거리에 80여 채의 가옥이 남아있다.


 

자세히 설명해둔 곳

최근에 정비한 듯..

여명의 눈동자 촬영세트를 알리는 홍보물..
참 예전에 유명했던 드라마장소이다.

 

근대역사관
거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근대역사관"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그 뒤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정원과 전형적인 일본식 집은 1920년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겐기치가 지은 살림집이다.
2층 일본식 모조가옥 으로 모든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직접 가지고 와 건립하였다.
하시모토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한국인이 살고 있다가 현재는 포항시가 복원 마무리 하여 구룡포 근대 역사관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1층은 홀로그램과 그래픽패널로 구룡포 전설을 소개하고 100년전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정착한 상황과당시 생활 모습을 전시 하였고,2층에는 패전 후 일본 어부들의 귀향 모습과 구룡포의 과거와현재 모습을 전시하였다

 

 

정문으로 들어섰을 경우에는 구룡포 근대역사관부터 가도록 하자. 상주하는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안내책자도 챙길 수 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지은 집이다. 2층으로 된 일본식 목조가옥을 짓기 위해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왔단다.

 아기자기한 정원과 일본식 다다미를 품은 전형적인 일본식 집은 구석구석 살필 수 있다.

포항시청 김재우 문화해설사는 "당시 구룡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큰 축은 하시모토 젠기치와 도가와야 스브로였다"며 "구룡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이 둘을 중심으로 건설업과 어업 등에 종사하며 자리를 잡아갔다"고 덧붙였다.


 

 

하시모토와 그의 딸..
하시모토는 상인이라고 합니다. 요즘 말하면 재벌이겠죠

 

 

 

딸의 방인거 같네요...

집안에 딸의 예전 및 현재의 사진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2층의 세 방은 후스마(나무틀을 짜서 양면에 두꺼운 헝겊이나 종이를 바른 문)로 분리해 놓았다가, 손님들이 왔을 때에는 후스마를 떼어낸 후 2층 전체를 사용했다.

특히, 2층은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장식해 놓았으며, 방과 복도 사이에 나무로 된 창살을 넣어 통풍과 빛이 잘 들어오게 했다. 2층에서는 구룡포 거리 일대가 내려 다 보인다.

또 100여 년 전 모습들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문화해설사가 항시 상주해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100여년 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구룡포 근대역사관’과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인식시켜 줄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산, 바다, 계곡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두루 갖춘 지역이다.
태백산맥, 소백산맥과 그 지맥, 동해로 주변지역과 경계를 이루며 전국에서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상을 취하고 있어 그 어느 지역보다도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천혜의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과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명소를 찾아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경북의 가볼만한 곳’을 연재한다

 

 

100년 전 구룡포 생활상을 그대로~

일본의 건축양식을 볼수있으며, 좀 특별한 느낌의 거리인것 같다.

이렇게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20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바꾼 일제강점기 때문이다. 포항 뿐 아니라 부산이나 통영 등 남해의 바닷가 마을에선 일본식 가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사라지면서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까지 일제강점기는 지속된다. 일본인 어부들이 구룡포에 들어선 시기와 맞물린다. 지금 남아있는 일본인 가옥을 보면서 당시 구룡포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종전 후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남겨진 거리는 이곳에 존재했던 '사람'과 '시간'을 여전히 기억해낸다.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부끄러운 과거일지 모르나...
역사는 역사입니다.

구룡포 사거리 즐겨보세요                                                                                                                              

 

하나. 적산가옥 둘러보기

아직 공사 중인 곳이 많이 있지만, 곳곳에 이국적인 풍경이 새롭고 좋네요.

 

둘. 적산가옥 끝에서 충혼탑으로 연결되는 옛동네 구경하기.

이곳은 우리의 80년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련해짐이 좋네요. 담장 위에 유리를 박아 놓은 풍경. 정말 오래간만이였어요.

주민이 살고 계신 개인 공간을 사진기를 들이대려니 죄송스러워서 사진이 없네요. 꼭 윗 동네까지 돌아보세요.

 

셋. 충혼탑에서 구룡포 내려다 보기

올라가는 계단이 꽤 높고 가파르니 저같이 적산가옥 끝에서 동네를 가로질러 오심 내려가는 길이니 좀 쉬우시겠죠?

옆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다하니 다음에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구룡포에 과메기 드시러 오시면 적산가옥 꼭 들러주세요

 

 

 
海菊 해국 보랏빛 그윽한 향기 우아한 자태 가파른 해변 벼랑 바위 에 터를 내린 너는 바람 부는 속세가...
 발길도 거부 하는 듯 우아한 자태로 바닷가 바위벽에 매달려 긴 기다림으로 너는 산국 꽃말 : 순수한 사랑.기다림

 

 

해국

보랏빛 그윽한 향기
우아한 자태
가파른 해변
벼랑 바위 에 터를 내린
너는

바람 부는 속세가 싫었나 보다.
너는


내 손길도 네 발길도 거부 하는 듯
우아한 자태로
바닷가 바위벽에 매달려

긴 기다림으로
너는

 

이주전 부터 호미곶 해국 담으려 갈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주말과휴일은 산행길로 쉽게 시간을 허락 하질 않으다

그래뜨 조금 기대 하고 갔지만~끝물이라 겨우 바윗틈 몇장만 담아본다.

날씨도 흐려고~해국 담기에 영 아니였다.ㅎ내년에 다시 기약 해본다